- [제목] 공정하다는 착각
- 저자 : 마이클 샌델
- 출판 : 와이즈베리
- 발매 : 2020.12.01
사회적 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
완벽한 공정은 존재할 수 없다. 완벽하게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모든 사람이 같은 날 같은 시에 같은 장소에 같은 DNA를 가지고 태어나야 하며 같은 환경에서 같은 생활 패턴으로 살다 죽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다양한 부모와 다양한 환경 다양한 DNA를 갖고 태어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한다. 지구상에 있는 단 1개의 생명체라도, 더 나아가 단 1개의 무생물이라도 같은 운명을 가질 수 없다. 슬프게도 이런 다양한 운명 속에서 누군가는 강자가 되고 누군가는 약자가 되고, 누군가는 다수에 속하고 누군가는 소수에 속한다.
우리 사회엔 수많은 사회적 소수층이 존재한다. 장애인, 성소수자, 저소득층, 외국인노동자 등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비장애인이고 이성을 좋아하며 저소득층이 아닌 대한민국의 젊은 청년’보다 많은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 그들이 소수가 아닌 다수여도 대한민국에서 권리를 누리지 못할까? 그들이 다수면 대한민국엔 장애인을 위한 시설물이 어딜 가든 존재했을 것이며, 성소수자들도 결혼하여 국가의 결혼 혜택을 누릴 수 있고, 순수 한국인 보다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이 더 높을 것이며, 저소득층은 사회적으로 위축되거나 놀림 받을 일이 없을 것이다. 사회적 소수계층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은 순전히 운이 좋아서 사회적 소수자가 아닐 뿐이다. 하지만 몇몇 다수의 운이 좋은 사람들은 당장 1초 뒤라도 본인이 운이 나쁘면 사회적 소수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망각한 채 운이 나빠 사회적 소수가 된 사람들을 배척하고 차별한다. 마치 다수라는 이유 하나로 자신들만 특권을 누리려고 하며 자신들이 너희보다 우월한 존재이고 너희는 열등한 존재라는 취급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매년 사회적 소수자와 관련된 여러 이슈가 나타난 가운데 최근 장애인 이동권 시위는 내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장애인들은 신체가 불편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상생활에서 아주 많은 불편함을 겪는다. 학력, 노동, 이동 등... 결국엔 그들이 겪는 불편함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그들은 과거부터 꾸준히 자신들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평화적으로 시위를 해왔다. 불행히도 그동안의 평화적 시위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최근 다수에 속해있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시위를 함으로써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어떤 사람은 시위가 너무 폭력적이라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평화적으로 시위하라고 주장한다. 법이 그들을 안 지켜주는데 그들이 법을 지킬 필요가 있나? 체제를 따라야 하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시위를 옹호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나는 이러한 시위 방식이 옳지 않은 정당방위처럼 보였다. 장애인의 시위가 이슈 되고 길을 거닐 때마다‘이곳은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최근 지하도로를 지나가는데 오로지 계단으로만 이루어져 있었고, 지금껏 살아가면서 버스를 탈 때 휠체어 탑승객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나니 내가 당연시 누리는 권리가 그들에겐 꿈만 같은 것이고, 그들이 이런 권리를 신체가 건강한 사람들처럼 누리기 위해선 시위를 통해서 또는 목숨을 걸어야만 쟁취할 수 있는 것이었던 것을 깨달았다. 지금보다 더 ‘좋은 사회’,‘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우리 사회는 사회적 소수자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말을 경청해야 하는데, 현실은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더 냉철하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듯하다.
다수인 우리는 어떤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봐야 하며,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너무 당연한 소리지만 그들의 상황에 그들의 현실에 진정으로 공감하여 그들이 겪는 불편함과 힘듦을 이해해야 하고, 나 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평생 사회 다수계층에 속할 수 없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미래의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현재의 나와 같은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 우리의 이기심을 위해 그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들도 우리와 같은 권리를 누리게끔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건강한 공정을 지향하는 이기심이 세상 모든 이기심 중 가장 선한 이기심이며 우리가 필히 가져야 할 이기심이 아닐까? 더 나아가 언제나 소수의 의견은 주목받기 힘들기에 다수인 사람들이 소수의 의견에 공감하고 보탬이 되어 목소리를 내주기를 희망한다. 다수에 속해있는 사람이 소수의 입장을 대변해 목소리를 내면 소수만 목소리를 내는 것보다 좀 더 문제가 빨리 해결될 것이다.
지금까지 나의 글에는 사회적 소수자에 속하지 않은 사람을 운이 좋은 사람 사회적 소수자를 운이 나쁜 사람으로 표현했지만, 내가 이러한 명칭들을 붙였으면서도 아무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려 하지 않는 희망 없는 세상에선 ‘운이 나쁜 사람’이라는 명칭이 마치 사형선고처럼 잔인하게 느껴진다. 운이 나쁜 사람들도 운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게, 이 세상에 운 좋은 사람들만 가득할 수 있게, 그들을 존중해주고 우리와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게, 이미 강한 그들이 더 강해질 수 있게 다수인 우리가 그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응원해줄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길 희망한다.
교양 기말 과제로 썼던 글이다. 사실 나는 원글에서 그들을 지칭할 때 '사회적 약자'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교수님께선 '사회적 소수자'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내 글에 대한 느낀 점을 피드백해 주셨다. 단어 하나가 주는 느낌은 매우 크다. '사회적 약자'라는 단어는 그들에게 넘을 수 없는 벽을 만들어 버리는 느낌을 준다. 나는 내 글에 '이미 강한 그들을 더 강해질 수 있게'라는 말을 썼으면서(천 개의 파랑 인용구이다 ㅎ), 그들을 '약자'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공부가 덜 된 나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매우 모순적이고 위선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매우 부끄러웠다. 이런 섬세한 부분까지 신경 쓸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 계속해서 배우고 생각을 넓히고 다양한 관점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계속 책을 읽고 나만의 생각을 가지며 여러 가지 생각들 또한 살펴봐야겠지.
이번 교양 수업을 들으면서 세상에 거짓된 정보는 있어도 틀린 생각은 없다고 느꼈다. 128명의 128개의 생각은 선과 악, 옳고 그름으로 나눌 수 없다. 128명의 128개의 생각은 빛의 스펙트럼과 같다. 최근 장애인 이슈에 대해서도 수백만 수천만가지의 생각들이 있을 것이다. 나의 주장에 동의를 안하는 이도 있을거고 동의를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내 생각이 틀렸다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나의 글을 볼것이고 이 글을 보고 어떤 생각을 가질지, 어떤 댓글을 달진 모르겠지만..
삭막한 인터넷 세상 속에서.. 상처받았을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해서 글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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