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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 Side/Book Notes

[책리뷰] 공정하다는 착각

by 까다로운오리 2022. 7. 4.

[제목] 공정하다는 착각
저자 : 마이클 샌델
출판 : 와이즈베리
발매 : 2020.12.01

 

 

완벽한 공정은 존재할 수 없다.


모든 이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동일한 DNA로 태어나 동일한 환경에서 같은 생활 패턴으로 살다 죽어야만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면—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각기 다른 부모, 환경,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며, 서로 다른 경험을 하며 살아간다. 지구상에 단 하나의 생명체조차 같은 운명을 가질 수 없다.

 

 

이 다양한 운명 속에서 누군가는 강자가 되고, 누군가는 약자가 된다. 누군가는 다수가 되고, 누군가는 소수가 된다.

 

 

우리 사회엔 수많은 사회적 소수자가 존재한다.

장애인, 성소수자, 저소득층, 외국인 노동자 등.

 

 

만약 그들이 다수였다면 어땠을까?

 

 

장애인을 위한 시설은 어디서든 볼 수 있었을 것이고,

성소수자도 결혼 제도를 통해 혜택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이 더 높았을 수도 있고,

저소득층은 위축되거나 놀림받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지금 이 땅에서 사회적 소수자가 아닌 이유는 단지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몇의 운 좋게 다수에 속한 사람들은,

언제든지 자신도 사회적 소수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오히려 소수자들을 배척하고 차별하며,

다수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치 특권을 지닌 존재처럼,

우월한 위치에서 그들을 바라본다.

 

 

 

 

최근 장애인 이동권 시위는 내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들은 신체의 불편함 하나만으로도, 학업, 노동, 이동 등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불편을 겪는다.
그 불편함은 단순한 생활의 불편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이어진다.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평화적인 방식으로 이동권 보장을 요구해왔지만, 늘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 다수에게 ‘피해를 주는 방식’으로 시위를 하자 비로소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누군가는 말한다.
“법 안에서 평화롭게 시위하라”고.

하지만 그 법은 그들을 지켜주고 있었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시위를 옹호할 수는 없지만,

나는 그 시위가 절박한 정당방위처럼 느껴졌다.

 

그 이후로 나는 길을 걸을 때마다,
‘이곳은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을까?’
‘이 계단은 휠체어를 탄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까?’
를 생각하게 됐다.

 

버스를 탈 때도 문득 깨달았다.
지금껏 나는 한 번도 휠체어를 탄 사람이 버스를 이용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내겐 너무도 당연한 일상들이,
그들에게는 ‘목숨 걸고 쟁취해야만 하는 권리’였음을 그제야 실감했다.

 

우리는 더 ‘좋은 사회’,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냉철하고, 그들에게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한다.


우리는 어떻게 그들을 바라봐야 할까?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그들의 현실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그들이 겪는 불편과 고통을 이해하며,
나 혹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다수일 수만은 없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의 권리를 지지하는 것이 곧 우리의 미래를 위한 일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건강한 공정을 지향하는 이기심—
그건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한 이기심이 아닐까?

 

더 나아가,
언제나 소수의 목소리는 작게 들리기 마련이므로,
다수의 사람들이 그 목소리에 공감하고 힘을 보태주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변화는 더 빠르고 깊게 일어날 수 있다.


내 글에서는 소수자를 ‘운이 나쁜 사람’이라 표현하고,
다수를 ‘운이 좋은 사람’이라 표현했지만,
사실 ‘운이 나쁘다’는 그 말 자체가 너무 잔인하게 느껴진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세상에서,

그 표현은 마치 사형선고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바란다.
운 나쁜 사람도 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세상.
모두가 존중받고,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사회.


이미 강한 사람들이 더 강해질 수 있도록,
그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응원해줄 수 있는 사회.

우리는 그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교양 기말 과제로 썼던 글이다. 사실 나는 원글에서 그들을 지칭할 때 '사회적 약자'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교수님께선 '사회적 소수자'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내 글에 대한 느낀 점을 피드백해 주셨다. 단어 하나가 주는 느낌은 매우 크다. '사회적 약자'라는 단어는 그들에게 넘을 수 없는 벽을 만들어 버리는 느낌을 준다. 나는 내 글에 '이미 강한 그들을 더 강해질 수 있게'라는 말을 썼으면서(천 개의 파랑 인용구이다 ㅎ), 그들을 '약자'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공부가 덜 된 나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매우 모순적이고 위선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매우 부끄러웠다. 이런 섬세한 부분까지 신경 쓸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 계속해서 배우고 생각을 넓히고 다양한 관점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계속 책을 읽고 나만의 생각을 가지며 여러 가지 생각들 또한 살펴봐야겠지.

이번 교양 수업을 들으면서 세상에 거짓된 정보는 있어도 틀린 생각은 없다고 느꼈다. 128명의 128개의 생각은 선과 악, 옳고 그름으로 나눌 수 없다. 128명의 128개의 생각은 빛의 스펙트럼과 같다. 최근 장애인 이슈에 대해서도 수백만 수천만가지의 생각들이 있을 것이다. 나의 주장에 동의를 안하는 이도 있을거고 동의를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내 생각이 틀렸다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나의 글을 볼것이고 이 글을 보고 어떤 생각을 가질지, 어떤 댓글을 달진 모르겠지만..

삭막한 인터넷 세상 속에서.. 상처받았을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해서 글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