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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 Side/Book Notes

[책리뷰] 나는 동물

by 까다로운오리 2025. 5. 5.

[제목] 나는 동물
저자 : 홍은전
출판: 봄날의책
발매 : 2023.10.20
 
 
독서록 - 『나는 동물』을 읽고
홀로 남원을 여행하며 묵은 스테이가 책방을 겸하고 있다면, 이 얼마나 럭키비키한 일인가.
급하게 떠난 남원 여행에서 나는 '도보 책방'이라는 숙소에 1박을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마주한 수많은 책 중 유독 시선을 끌었던 한 권, 『나는 동물』을 펼쳤다.
저자 홍은전 님은 인권·동물권 기록활동가로, 특히 장애인 인권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계신 분이다.
 
 
 

- 동물권

 
책은 수어가 가능한 침팬지 '부이'의 이야기로 시작하며, 『짐을 끄는 짐승들』의 저자 테일러의 문장을 인용한다.

"왜 수어를 모르는 침팬지는 외롭게 감금되고, 그렇지 않은 침팬지는 대중적 항의를 불러일으키는가.
언어는 어떻게 그런 권력을 갖게 되었나.
우리가 케이지에서 꺼내고 싶은 것은 침팬지가 아니라, 언어라는 인간적 능력이 아닌가."

 
이 문장을 읽으며, 얼마 전 회사로 출근하던 길에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회사 옆 공터엔 넓게 펼쳐진 풀밭이 있다. 언젠가 이 땅도 개발될 테고, 그때 이곳의 나무들은 옮겨질까? 베어질까?"
 
생각에 사로잡혀 회사에 가는 도중 문득 내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터 안에는 수 많은 생명이 있는데, 나는 나무의 생명만 소중히 생각하고 있던게 아닌가.
비단 우리가 잡초라고 부르는 풀들도 또 하나의 생명일터인데, 너무 인간 중심적으로
생명의 우열을 가려서 생각했다는 생각을했다.
 
테일러의 말은 인간중심적 사고에서의 생명의 우열을 말하고 있으며,
나는 이를  수어를 모르는 침팬치보다 수어를 아는 침팬치가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생명의 우위에 있어
인간의 공감을 사기 때문에,
더 큰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생각한다.
 
또 내가 회사에 가면서 은연중 다른 생명의 죽음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나무의 생명만 소중이 생각한 것 또한, 은연 중 잡초같은 풀 보단 나무를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더 우수한 생명으로 보고있기 때문아니었을까.
 
 
인간 사회에서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나와 유대감이 더 많은 존재’를 더 가치 있는 생명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본능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면,
우리는 결국 늘 그랬듯, 생명의 위계를 따지고,
조건부 공감, 선택적 공감을 반복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본능을 거스르고, 모든 생명을 동등하게 바라보는 시도는
어쩌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일러의 말은 나에게 계속 질문을 던진다.

과연 모든 생명을 동일한 가치로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일까?
그렇게 사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일까?
본능대로 살아가는게 옳지 않은 행위인지에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본능을 따르며 살아가기엔,
현대의 인간은 이미 너무도 많은 생명들을 죽이며 살아가고 있다.

"오늘날의 가축들은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죽음을 맞는다.
그 죽음은 ‘합법’으로 규정되며,
죽인 자는 피해자의 자리에 있고,
죽음을 막으려는 자는 오히려 가해자의 자리에 놓이는 법정.
그 속에서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그들을 위한 자리는 어디에도 마련되지 않았다" 

 
이 문장이 유독 오래 마음에 남았다.
 
"살아있는 가축이 갈 곳은 어디에도 없다."
 
매년 전 세계에서 500억 마리 이상의 닭들이 도살된다.
사육되는 닭과 오리는 부리가 잘리고, 돼지는 꼬리와 성기가 잘린다.
이는 인간이 동물에게 의도적으로 ‘장애’를 입히는 행위라는 사실을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저자는 말한다.
축산업을 통해 나온 사체인 ‘고기’는 인간의 눈으로 보면 ‘음식’이지만,
동물의 눈으로 보면 ‘폭력’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인상 깊었던 표현.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서 인간은 나치이며,
인류 역사 최악의 범죄인 홀로코스트가
지금도 우리의 식탁 아래 거꾸로 매달려 작동되고 있다.”
이 같은 저자의 표현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대학 시절, ‘독서 토의’ 교양 수업에서 ‘동물권’이 주제로 나왔을 때마다 떠오르던 생각이 있었다.
‘이 세상은 본래 약육강식의 세계이며, 모든 생명체는 저마다의 장점을 활용해 생존해 나간다’는 것.
예를 들어 치타는 빠른 속도로, 독수리는 날카로운 시력과 비행 능력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을 도모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두뇌’라는 도구를 활용해 스스로의 삶을 일구어온 것이고,
그것이 정말 비난받아야 할 일인가?
 
또 ‘환경을 보호하자’는 말조차도,
결국은 인간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기 때문에 나오는 이야기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이 질문을 곱씹은 끝에, 내가 내린 결론 다음과 같다.
 
인간은 ‘지적 생명체’이기에,
본능에만 따라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생명을 ‘배려’하고, 때론 ‘본능을 거스를 수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생명이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인간의 도리이자, 인간답게 사는 방식 아닐까.
나는 고기를 먹지 말자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소비하는 가축들이 살아 있는 동안만큼은
‘살아 있는 존재’로서 최소한의 존엄과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인간의 생존을 위한 타협이라면,
그 타협마저도 ‘인간답게’ 이뤄져야 한다고 믿는다.
 
 

- 인권

 
저자는 이 책에서 장애인의 인권에 대해서도 같이 말하고 있다.
사실 이 전부터 책과 미디어로 장애인 인권 문제에 대한 소식들을 읽고 들으며,
우리나라의 장애인 인권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알고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개선되어야 할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그들을 위해 내가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
생각만 계속하던 찰나 이 책이 내게로 왔다.
 

"우리는 밥을 많이 먹으면 화장실을 많이 갈까 봐 마음을 졸입니다. 서울에 퉂쟁하러 올 때면 며칠 전부터 물도 적게 먹고 밥도 적게 먹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찌나 물도 더 먹고 싶고 밥도 더 먹고싶어지는지요"

 
한국은 경제 협력 개발기구 국가 중 장애인 예산이 OECD  국가 중 꼴지이다.



작년 8월 마지막날 나는 친구를 만나고, 집에 가기 위해 버스에서 내리다가 도로의 홈에 발이 빠져 다리를 삐끗하게되었고,
일어나려하였지만, 다리에 힘이 안들어가서 그때 내 발목이 큰일났음을 느꼈다.
그렇게 다음날 바로 병원에 갔을때 인대가 찢어졌다는 진단을 받아
나는 생에 처음으로 다리에 깁스를 하게되어, 목발 신세를 지게 되었다.
 
 
나는 평소에도 장애인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장애인의 일상은 어떨지 상상해보며 거리를 걷곤 했다.

하지만 ‘생각하는 것’과 ‘직접 겪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목발을 짚고 깁스를 한 채 거리를 다니는 일상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고되고 불편했다.
 
우선 에스컬레이터는 그야말로 ‘빛’ 같은 존재였다.
그조차 운행하지 않을 때는, 계단을 한 발짝씩 내려가는 것조차 공포였다.
그럴 때 사람들은 위태롭게 움직이는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곤 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은 시스템과 사람들의 많은 배려가 필요함을 깨달았다.
 
집 안에서도 불편은 계속됐다.
편히 쉬어야 할 공간이었지만, 씻는 것도 어렵고,
작은 물건 하나를 가지러 가는 일조차 ‘작업’처럼 느껴졌다.
자는 것 또한 고역이었다.
몸을 조금만 비틀어도 발목이 아팠고, 결국 자세를 고정한 채 잠들어야 했다.
그제야 나는 누군가에겐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들이,
다른 누군가에겐 굉장히 힘들고 불편한 일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
 
한때 전장연의 시위가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다.
나는 당시 시위 현장을 직접 마주한 적은 없었지만,
시위로 인해 불편을 겪는 시민들의 불만도,
장애인들의 절박한 외침도 모두 이해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런 태도를 가졌던 과거의 나를 깊이 반성하게 되었다.
 

전장연 시위는 4월 20일 박경석 활동가를 필두로 전장연의 장애인 활동가들은 멀쩡한 휠체어에서 내려와 바닥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리가 얼마나 강한지' 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약한지'를 보여주는 난감하고 충격적인 시위였다.
장애인들이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커다란 틈을 가까스로 통과하는 동안 열차의 통제실에서는 수십 년째 이 열차가 장애인을 태우지 않았음을 알리는 대신 장애인들 때문에 열차가 운행되지 못하고 있음을 알렸다.
이곳은 비장애인 중심 세상의 핵심 시간이자 핵심 공간. 모두가 이 초대받지 못한 자들을 내려본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먹고 사는 주제에 이렇게 남한테 피해를 주면 안 되죠!"
20분을 늦은 여자가 20년을 갇혀 산 여자에게 자신이 입은 피해를 보상하라고 핏대 세우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는 또 다른 여자가 고개를 숙인 채 눈물 흘린다.

 

당장 가야 할 길이 막힌 사람들이 길길이 날뛰며 우리(전장연)이 법을 어겼다고 비난했다. 참 이상한 말이었다. 장애인은 어길 법조차 없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한 발짝만 내디디면 벼랑 끝인 이들에게 이 사회는 신호를 지키라고 했다. 그러나 선을 넘지 않고서는 절대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열차를 막았고, 동시에 어떤 죽음을 막았다.

 
" 그건 당신들 사정이고 왜 우리가 피해를 입어야 돼요?"
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죄 없는'시민들
"살아있다는 것이,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어마어마한 특권처럼 느껴진다.
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비장애인들은 이 시스템의 수혜자라고 말하는데, 이 말에 극히 공감하는 바이다.
이 사회는 그들을 배려하지 않았기때문에, 비장애인인 나는 수혜를 얻고 있었으며,
수혜에 익숙하고 당연해진 비장애인들만이 계속해서 수혜를 누리려 한다.
그들을 위한 제도가, ‘자신의 몫을 빼앗는 일’이라 여긴다.
100을 가진 이들이, 0을 가진 사람에게 단 1을 나누는 것조차
자신의 것을 ‘마이너스로 만드는 일’이라 여기며 반발한다.
결국 그들은, 힘을 가진 자로서 소수자를 법 앞에 가해자로 세운다.
그러면서도 그 ‘소수자’가 미래의 자신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외면한다.
 
 
 
 
그들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이제는 더 이상 생각에 그치지 않고
실천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비록 아주 작은 걸음일지라도,
그 발걸음이 모여
더 많은 존재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
세상이 조금씩 움직이길 바란다.